무극대도의 특징  

화암(和菴) 김 호 성

수운 대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제 후로부터 성인이 나시어 일동일정과 일성일패를 천명에 부쳤으니, 이는 천명을 공경하고 천리를 따르는 것이니라. 그러나 이 근래에 오면서 온 세상 사람이 각자위심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대인의 마음은 항상 모든 일을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하늘의 이치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는 반면 소인의 마음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하늘을 믿지 아니하고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는데 이는 하늘의 이치를 아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무극대도가 이 땅위에 창명된 것은 바로 이러한 대신사의 마음과 한울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하신 한울님의 말씀이 이를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으실 때 한울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영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한울님의 선약인 영부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한울님의 존재를 믿게 하고, 주문을 통하여 한울님을 위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세상사람들 모두가 한울님의 뜻과 하나가 되어서 하늘의 이치대로 살아가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영부란 한울님의 선약이므로 한울님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한 사람에게만 한울님의 무궁한 조화가 나타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부를 통하여 한울님의 무궁한 능력과 조화를 깨닫게 함으로써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한울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정성 드리고 또 정성을 드리어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매번 들어맞고 도덕을 순종치 않는 사람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으니 이것은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신 대신사님의 말씀은 이를 의미합니다.

한울님께서 수운 대신사께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사람이 어찌 이를 알리오. 천지는 알아도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 너는 무궁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고 단련하여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극대도란 한울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무궁무궁한 도이며 한울님은 천지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인 귀신과도 같은 분이시며 사람들은 이러한 한울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그 절차와 도법을 대신사가 먼저 체험해 본 후에 글을 지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라고 한울님께서 명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대신사께서 그 절차와 도법을 완성하시니 이것이 바로 주문 21자입니다. 대신사께서는 이 주문 21자는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글(呪文)인 동시에 한울님의 기운과 지극히 하나가 되는 글(降靈之法)이고 또한 항상 잊지 않고 염념불망해야만 하는 글(不忘之詞)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또한 거의 한 해를 닦고 헤아려 본즉, 또한 자연한 이치가 없지 아니하므로 한편으로 주문을 짓고 한편으로 강령의 법을 짓고 한편으로 잊지 않는 글을 지으니, 절차와 도법이 오직 이십일자로 될 따름이니라.” 라고 하신 대신사님의 말씀은 바로 이를 의미합니다.

「지금 천령이 선생님께 강림하였다 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대답하시기를 「가고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를 받은 것이니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고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에 대해서 단순히 순환지리라고 해석하여 천도의 이치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가고 돌아오지 않음이 없는 이치라고 하는 것은 한울님과 대신사간에 서로 주고받는 강화지교의 이치를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경전에 “ 명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이치가 주고받는 데 묘연하니라.” 하신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무극대도의 장점이자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양학은 우리 도와 같은 듯하나 다름이 있고 비는 것 같으나 실지가 없느니라.」
「서양 사람은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단서가 없고 다만 제 몸만을 위하여 빌 따름이라.」

「우리 도는 무위이화라.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요.」

무극대도와 서학이 크게 다른 점은 서학은 한울님을 위하는 일에는 정성을 드리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빌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울님의 감응을 받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무극대도는 한울님을 위하는 일에만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헛된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게 되면 내게 정작 필요한 일은 비록 한울님께 빌지 않더라도 한울님의 감응에 의해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무위이화의 도법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무극대도의 특징은 이치로만 생각해서는 절대로 그 경지를 깨달을 수가 없는 도이며 반드시 체험을 통해서만이 도의 본체를 깨달을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닦는 사람은 헛된 것 같지만 실지가 있고, 듣기만 하는 사람은 실지가 있는 것 같지만 헛된 것이니라.”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무극대도의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한울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사께서 “대저 이 도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정성이 되느니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정성과 믿음이 둘이 아니요 하나인 것이고 믿음과 공경 또한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입니다.

대신사께서는 “나의 심주를 굳건히 해야 이에 도의 맛을 알고, 한 생각이 이에 있어야 만사가 뜻과 같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한울님에 대한 정성, 공경, 믿음이 한결같아야만 도의 맛을 알게 되고, 만사가 뜻과 같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덕에 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믿음에 있고 공부에 있는 것이 아니요, 가까운 데 있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요, 정성에 있고 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은 듯하나 그러하고 먼 듯하나 멀지 아니하니라.” 라고 말씀하신 대신사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무극대도를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몸에 모신 한울님을 스승으로 삼고 한울님을 굳게 믿으며 한울님에 대해 정성과 공경을 다 함으로써 한울님의 덕을 닮아가는 것이 바로 도성덕립의 기본이라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교훈가에 말씀하신 다음 구절은 바로 한울님을 스승으로 삼아서 무극대도를 닦으라는 교훈의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해음없는 이것들아 날로믿고 그러하냐 나는도시 믿지말고 한울님을 믿었어라 네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 하단말가” 이 말씀과 같이 무극대도는 강화지교로써 한울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는 무왕불복의 天道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울님과 주고받는 천도의 깨달음에 있어서 묘연한 경지를 직접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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