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설교문

수원교구 명암:이갑식

포덕 148년 (2007년) 12월 30일

동덕여러분!
한 시일동안 모시고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설교는 우리 경전에도 자주 언급이 되는 "역지사지"에 대하여 말씀드릴까 합니다.
역지사지의 뜻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상대방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일견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고 쉬운 것 같지만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피맺힌 한 의사의 사랑밭 새벽편지에 소개된 수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제목이 나물파는 어머니인데…
주인공의 어머니는 매일 시장 한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았습니다.
다리도 불편한 몸으로 매일 시장 한 모퉁이에서 나물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ㅡ 모습을 매일 보는 주인공은 그 어머니가 정말 싫었겠지요.
어린 시절 수기의 주인공은  시장근처를 지니가는 일이 고통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지나고 있을때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부르면 어떡하나…
초췌한 모습으로 불쑥 앞에 나타나면 어떡하나 항상 두려웠다고 합니다.
초라한 어머니가 정말 싫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없이 자라면서 궁색한 살림과 가난 그리고 초라한 어머니가 너무도 싫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원래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던 분이었는데
공사장에서 사고을 당하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다리를 다쳤던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그 어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장통 모퉁이에서 나물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이 이렇게 초라하고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길은 열심히 공부한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가끔 어머니가 절룩거리는 몸으로 학교을  찾아올 때면 그는 고개를 숙이고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아버지 어머니처럼 초라한 삶은 살지않겠다."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의 소원처럼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부자인 아내를 얻어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병원도 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헤어진 그는 매달 넉넉한 생활비를 어머니에게 보내는 것으로 아들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구질구질한 지난 날이 떠오를까봐 어머니를 직접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예쁜부인과 사랑하는 자식들과 함께 행복에 쌓여 꿈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것도 고향에 있는 모교의 선생님으로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알았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집으로 찾아간 그를 맞아주시는 분도 선생님이었습니다.
그가 고향을 떠난 뒤에도 선생님은 가끔씩 어머니를 찾아가 안부를 물으셨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계시던 선생님께서 입을 열더니 너무나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가난하지만 정이 넘치는 부부가 있었지.어느 날 그 부부는 포대기에 쌓여 버려진 갓난아이를
발견했지.가난한 부부였지만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그 아이를 안고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키웠지.
늘 공사장에 나가야 하는 부부는 할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곤했지.
그러다가 일이터진 거야.
포대기에 쌓여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기 위로  철근더미가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지.
부부는 급한 마음에 아기를 구하겠다고 달려들었어.
결국 남편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아내는 다리를 다쳤지.
그 순간 무언가 낌새를 알아차린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 얘기가 바로 자신의 얘기임을 알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답니다.
이제 아무리 울어도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제 아무리 땅을치고 통곡을 해봐도 한 번 돌아가신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못다한
효도도 해 볼 수가 없습니다.
보모는 영원히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자기를 길러준 양부와같은 입장이 되었다면 과연 그 자신은 어떻게 하였을까!!!
한치앞을 못 보는 인생이라고 화무 무십일홍이요.열흘이상 붉게피는 꽃이없고 권불십년이라.
제아무리 권력을 가졌어도 10년을 못가는데 우리인간은 즐거운 환상과 착각의 수렁에서
헤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입장을 한 번 바꾸어 생각해 보고 행동했더라면 사무치게 후회하는 삶은 살지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노부부의 슬픈 사연이 있어 소개해 볼가 합니다.
어느 농촌에 노부부가 살고 있었답니다.
공기좋고, 인심좋고…노부부는 동네사람들에게 서울사는 아들 내외 자랑 공주같이 예쁜 손녀자랑
하면서 아주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답니다.
하나 밖에 없는아들을 일찍이 서울로 유학보내고, 두 부부는 고생 고생하며 학비를 조달하여
대학까지 졸업시켰고……….
지금은 재벌회사 과장까지 승진하여 강남 아파트에서 명문대학 나온 우아한 아내와 잘 살고
있는 아들은 정말이지 이 부부에겐 크나큰 자랑이었답니다.
아들은 여간한 효자가 아니어서 추석이나 설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제 식구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와서 명절을 보내고 올라가곤 했었답니다.
사람들에게 늘 으쓱대는 기분을 느끼곤 하였지요.아들 내외는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아버님
어머님 시골에서 이렇게 고생하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서울로 가시지요.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아니다.
우리같은 늙은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서울이 다 무에야.
그냥 이렇게 살다가 고향땅에 묻힐란다" 하고 사양했더랍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노부부는 언젠가는 서울의 강남에 있는 아파트에서 아들 덕택에 호화스럽게
사는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해 했더랍니다.
그러다가 노부부중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상을 치르는 내내 아들 내외가 어찌나 애통하게 엉엉우는지  동네사람들도 모두 가슴이
찡하였답니다.
"아버님, 이제 어머님도 가시었으니 어쩌시렵니까?
고향집을 정리하시고 서울로 올라가시어 저희와 함께 사시도록 하시지요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할멈도 떠나간 이제, 그도 그럴것이다 싶어 노인은 몇날을 생각타가 결심을 하였답니다.
논밭과 야산등… 모든 가산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갔답니다.
가산을 정리한 돈은 아들 내외에게 주어 32평 아파트에서 42평 아파트로 옮기고…
노인의 서울생활은 처음엔 그런대로 평안하였답니다.
그즈음 아들은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할 때도 되었고, 회사일이 워낙 바쁘기도 하였으므로 매일
새벽에 출근하였다가 밤12시가 넘어서야 퇴는 하는 일과가 몇 달이고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이 모처럼 일찍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보니 집안이 썰렁하니 비어 있더래요.
다들 어디 갔나? 하던 차에 식탁위에 있는 아내의 메모를 보았더래요.
메모에는
여보 우린 모처럼 외식하러 나가요. 식사 안하고 퇴근하였다면 전기밥솥에 밥있고 냉장고 뒤져 반찬찾아
드세요. 좀 늦을지도 몰라요.
가족을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속을 뒤져 맥주를 찾아서 마시고 있자니 현관쪽이 시끌해지며 나갔던
식구들이 돌아오는 기척을 느겼습니다.
아, 그런데 들어오는 걸 보니 아내와 딸 둘만 보이는게 아니겠어요?
"왜 둘만이지?"
"둘만이라니? 요기 밍키도 있잖아?"
아내는 강아지를 남편의 눈앞에 들어보이며 활짝 웃었습니다.
"아니, 아버님은?"
"오잉? 아버님 집에 안계셔? 어디 노인정이라도 가셔서 놀고 계신가?"
"아버님이 매일 이렇게 늦게 들어오시나?"
남편이 약간 걱정스런 얼굴로 묻자
"웅, 으응…" 아내는 더듬거렸습니다.
사실 아내는 평소에 노인이 몇시에 나가서 몇시에 들어오는지 도통생각이 안납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노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노인이 들어오실 때까지 자지않고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서재의 책상앞에 앉았습니다.
그 사이 아내는 벌써 잠들어 세상모르게 자고 있습니다.
그때 아들은 책상 한켠에 정성들여 접혀진 쪽지를 발견하였습니다.
볼펜으로 꾸~욱 꾹 눌러쓴 글씨… 무슨 한이라도 맺힌듯이 종이에 "잘있거라 3번아 6번은 간다"…
자정도 넘어 밤은 깊어만 갑니다. 노인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은 머리를 쥐어짜고 생각에 잠깁니다.
"잘 있거라 3번아, 6번은 간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이 시간까지…아버지가 귀가 안 하신걸보면  가출하신 것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한데…왜 가출을 하셨을까!!!
아들은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왠지 우중충하다는 느낌이 드는 방이었습니다. 이쪽 벽에서 저쪽 벽으로 빨랫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빨랫줄에는 팬티 두장과 런닝셔츠 두벌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 것이겠지요.
방 한켠에는 어린 딸의 옷장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어린 딸이 이제 그만 지겨워한다고 옷장을
더 예쁜 것으로 바꿔주고 나서 이 헌 옷장을 아버지 몫으로 돌린 모양입니다.
옷장 위에는 어머니의 사진이 놓여있습니다.
참으로 착하디 착한 얼굴입니다.
상 치를때 영정으로 사용하던 사진입니다.
방구석에 소반이 있었습니다.
소반 위에는 멸치 볶음, 쇠고기 장조림, 신김치,  뚜껑있는 보시기가 몇 개 있었고 마시다가 반병정도
비어있는 소주병이 있었습니다.
아아~~, 아버지… 아들도 있고, 며느리도 있고, 손녀딸도 있는데
아버지는 그 동안 이 골방에서 홀로 식사를 하시고 계셨던가요?
아아~~, 아버지…며느리도 있고 세탁기도 있는데…아버지는 팬티와 런닝샤스을 손수빨고 이 방에서
손수말리고 계셨던가요…!!!
아들은 무언가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고 싶은 자괴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날이 부옇게 밝아오자 아들은 아파트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혹시나 노인이 어디선가 밤을 지새운 흔적이
있는가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파출소에 가서는 노인의 가출을 신고하였습니다.
고향에 이장 어른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종적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3번아 잘있거라 6번은 간다….
이 암호를 우선 풀어야 아버님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아들은 조바심을 쳤습니다.
직장동료, 상사…대학동창등…. 현명하다는 사람은 다 찾아 이암호를 풀려고 노력했으나 아무도
그ㅡ 암호를 푸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몇날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들은 이제 부장진급이고 뭐고 아무 생각없고… 오로지 아버님 생각만 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술한잔에 슬픈 마음을 달래고 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 자네 김아무개 영감 자제가 아니던가?
아파트 입구에서 어떤 영감님이 아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 아, 예…그런데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 웅, 난 김영감 친굴세…근데 요즘 왜 김영감이 안뵈네?
그리구 자넨 왜 그리 안색이 안좋은가?
그래서 아들은 약간 창피하긴 했지만 아버지께서 가출한 얘기를 간단히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감님에게 이제는 유서가 되다시피한 그 암호문을 내밀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물어보았습니다.
영감님은 그 쪽지를 한동안 보더니 돌려주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자네 이것이 무슨뜻인지 몰겠다구?
이사람아, 김영감이 늘 얘기하곤 했지….
우리집에서는 며느리가 젤 위고 두번째는 손녀딸이고 3번이 아들이라고 했지.4번은 강아지밍키이고
5번은 가정부라했네…그리고 김영감 자신은 아무작에도 쓸모없는 6번이라하고는 한숨짓곤하였지…
그렇게  쉬운것도 자네는 풀지 못하나? 에잉…""
아흐흐흐흑…아들은 그만 눈물을 주루루룩 흘리고 말았습니다.
아, 아버지 죄송합니다….
어찌 아버지가 6번입니까…. 1번, 아니 0번 이지요…
돌아서는 아들의 등 뒤로 영감님이 한마디 했습니다.
고향엔 면목없고 창피해서 아니 가셨을 거여.. 집 근처에도 없을거고..
내일부터 서울역 지하철부터 찾아보자구... 내 함께 가줌세.....
여러분은 지금 몇번입니까?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아버지 여러분 ...
당신은 몇번이며 당신의 아버지는 몇번입니까?.....................
옛말에 "한집안이 잘 되려면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집안 며느리도 언젠가는 늙어 죽음이라는 평등앞에서는 피할 방법이 없을 것같은데 천년만년
호의호식하면 잘 살거라 착각하고 있는케이스입니다.
나이들면 자기도 며느리보고 사위보고 늙어서는 자식들 신세을 지다 생을 마감할 것인데
입장을 바꾸어 즉 역지사지하여 자기가 시아버지의 입장이 됐다고 생각하고 한 번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봤더라면 이런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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