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탄교구 이전 봉고식에  
송탄교구 봉고식에
포덕 146(2005)년 12월25일 중암 라명재

1. 대도의 종지는 개벽이다.
차분히 한해를 마무리하는 때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해가 다 가도록 나라 안팎이 매우 어수선합니다. 온국민의 희망을 받고있던 과학자의 추락에 온나라가 우울증에 빠진 듯하고 사람들의 기가 가라앉으니 하늘의 기도 불안정해서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지 않습니까? 사람들 사는 모습도 더 여유가 없어 보이고 힘들어 보입니다. 뭔가 새해에는 희망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젠 희망을 찾고 비전을 얘기할 때입니다.
146년전 대신사께서는 당시의 세상을 유교봉건사회와 제국주의적 국제질서등으로 사람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있다고 보고, 개벽되어야 할 사회로 규정지었습니다. 지금세상은 유교적 윤리대신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고, 제국주의 대신 신자유주의의 국제질서가 세상을 규정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교적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우리사회가 사람들을 사회적 지위나 재산에 따라 차이없이 한울님 모신 사람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제국주의는 없어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이 다른 나라의 시장까지 지배하도록 무차별적인 개방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기술장벽은 쌓아둔채로 지요. 지금 우리 농민들이 기로에 선것도 그런 때문 아닙니까? 그렇다면 조선말에 대신사님이 “아서라 이세상은 요순지치라도 부족시오, 공맹지덕이라도 부족언이라”고 하시며 다시개벽 해야 되겠다고 했던 문제가 지금 해결되었습니까?
세상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람들이 한울님은 모른채 자신만 아는 ‘각자위심’ 때문이었다고 문제의 핵심을 갈파하셨습니다. 때문에 이런 ‘군불군 신불신 부불부 자부자’의 세상을 다시개벽하기 위해서 가르치신 것이 주문 21자로 함축된 무극대도 입니다. 그중의 핵심은 바로 ‘모심’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한 기운과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고, 사람과 사물이, 사람과 한울이 모두 한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깨닫고 사람과 사물과 한울을 위하고 섬기고 모시는 것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후천 5만년을 이어갈 새로운 세상의 모습입니다.

2. 개벽의 때
이젠 개벽을 해야할 때입니다. 사람이 개벽되면 인내천의 사람이 되는 것이요, 사회가 개벽되면 지상천국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개벽은 모심으로 시작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의 잃어버린 참모습을 되찾아 모십시오. 그것이 내유신령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가까운 가족과 동료 친구들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며 위하십시오. 물론 이것은 조건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밖의 모든 사람과 사물을 배려하고 위하는 것이 외유기화입니다. 사람과 사물을 위하는 것이 한울을 위하는 것입니다. 일체만물이 지기로서 한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유신령과 외유기화를 느끼면서 자신을 바꿔야 합니다. 개벽되야 합니다. 지금 까지의 습관된 모습을 다 버려야 합니다. 생명은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환지리고 무왕불복지리입니다. 만약 변하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사람에서 가장 생명이 충만한 때가 언제입니까?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들은 몸도 생각도 모두 유연합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가르쳐도 쉽게 자기것으로 소화합니다. 시시로 자라고 변합니다. 반면에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몸도 마음도 굳어갑니다. 자기가 그동안 해오던 대로만 하려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도 마음도 완전히 굳어 버립니다.
생물학적인 노화는 어쩔수 없다해도 마음은 유연함을 유지할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마음이 유연하면 몸도 덜 굳습니다. 요즘, 은퇴한 뒤에 새로운 생활을 개척하시는 노인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대기업 부회장 하던 분이 레스토랑 서빙을 하기도 하고, 대학 총장을 지낸분이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도 하고,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젊을때 같지는 않지만 같은 또래의 분들보다 훨씬 젊고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 이분들이 이전의 지위와 체면에 얽매였다면 그렇게 자유롭게 제2의 인생을 살수 있었겠습니까?
조직과 단체도 마찬가집니다. 천도교가 동학혁명과 3.1운동등을 주도하면서 세상을 앞서 나갔었지만 거기에만 집착해선 안됩니다. 처음부터 다시 우리 일반교인들의 마음을 살피고 이웃들의 마음을 모시면서 사람들의 삶속으로 다시 들어와야 합니다.
송탄교구가 이사오기전에 40년을 도시계획에 묶여서 이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건물을 개보수 할 수도 없었습니다. 마치 사지를 꼼짝못하는 중환자와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도시계획이 확정되어 철거한다고 이사가랍니다. 사실 그때부터 이 중환자가 다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이전할 땅과 건물을 알아보고, 이곳 당현리 창고로 확정 지은뒤에는 추운 겨울에 시일볼 수 있도록 개보수 작업하고... 그동안 애쓰신 여러 동덕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고생들 하면서 교구가 다시 살아난 겁니다.
여러분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직 할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일이 많은게 행복합니다. 전 교당에선 보수하고 싶어도 손댈수가 없어서 할일도 없고 그래서 변화도 없이 정체된 느낌이었는데, 이곳에 이사와선 보이는게 다 할일 들입니다. 매주 올때마다 조금씩 교인들의 정성으로 교당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교당이 살아있고 개벽되고 있는데 왜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3. 교당은 법의 연못이자 봉황의 집, 봉황대입니다.
오늘이 교당 이전을 한울님과 모든 분들께 고하는 이전 봉고식입니다. 사실 교당이 없어도 믿음을 가진 사람이 둘 이상 모여 스승님의 도를 배우는 곳이면 어디나 교당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동학시절에는 번듯한 교당하나 없었어도 신앙 하나로 맨발로 다니며 포덕하고 세상을 바꿔 나갔던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사정이 허락되면 최소한의 시설을 갖춘 교당은 우리들이 신앙하는데 마치 ‘단음식에 설탕을 더하고 흰바탕에 예쁜 색을 칠하는 듯’ 할 것입니다.
대신사께선 “우리 도는 넓고도 간략하니 많은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별로 다른 도리가 없고 성․경․신 석자”라고 하셨고 의암성사께서는 “自心自誠하고 自心自敬하고 自心自信하고 自心自法하라”고 하여 대신사의 가르침에 법하나를 더하셨습니다.
여기서 법이란 신앙을 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칙입니다. 천도교인으로써 지켜야할 최소한의 규칙은 오관입니다. 주문, 청수 ,시일, 성미, 기도의 오관은 성사님께서 교인으로 지켜야할 자격의 1%라고 하셨습니다. 이 1%도 지키지 못하면 교인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나머지 99%는 신앙입니다.
이 99%의 신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교당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당이 새롭게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도 여기 있습니다.
교회에서 진리의 법을 배우고, 배운 진리를 믿으며 그 믿음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위하고 사물을 위하고 한울을 위하는 것이 공경입니다. 그러한 믿음과 공경이 변함없이 실천되는 것이 정성 곧 수심정기이고요. 이 네가지가 도의 요체요 핵심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 교당이 송탄 평택지역을 개벽하는 진리의 근원, 용담이 되고, 개벽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집으로 여기는 봉황대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개벽된 사람들이 희망을 찾고 모두에게 희망을 퍼뜨리게 될 것을 한울님과 스승님께 다같이 심고드리면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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